총동창회 뉴스
[교수칼럼] AI 말은 의미의 무게를 지지 않는다 - 배제성(일반대학원 14) 유학동양학과 교수
- 총동창회
- 조회수205
- 2025-10-24
배제성(일반대학원 14) 유학동양학과 교수
챗지피티(ChatGPT), 제미니(Gemini), 딥식(DeepSeek) 등 다양한 AI가 우리 일상 속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교육 현장은 이런 변화가 두드러지는 장소 중 하나이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때나, 심지어는 실시간 토론에서도 재빨리 AI를 활용하곤 한다. 이런 변화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적응해 가야 할 변화이고, AI의 엄청난 효용을 고려할 때 그러한 적응의 당위성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이다.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과연 가능한지를 점쳐보던 시기, 튜링 테스트는 그 성패를 따져보기 위한 기준으로 고안되었다. 핵심은, AI가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관찰자가 AI와의 대화를 보고 사람과의 대화라고 착각한다면, 인간처럼 사고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AI가 인간의 언어를 흉내내는 것이다. 지금의 AI라면, 적어도 어떤 수준에서는 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AI의 도움을 청하는 일들은 다양하고 어떤 것들은 소소하다. 필자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감사한 제안이나 부탁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거절해야 했을 때, 난감한 마음에 적절한 문구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시된 문구들은 예의 바르게 보였고,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하는 마음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문구들을 조금 고쳐서 메일을 보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쩌면 AI의 말을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튜링 테스트는 내면적 사고 자체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어진 문장에 대해서 사람이 보기에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반응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뛰어난 AI처럼 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든 상황에서 흠잡을 데 없는 말을 하되, 그 말의 ‘의미’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이런 정도가 아닐까? 이것은 AI에게는 흠이 될 수 없다. 애초에 그것은 그러한 의미를 이해하고 경험할 의식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어떨까?
AI가 사람의 말을 잘 흉내낸다고 해서 그것이 사람의 말과 똑같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AI의 말을 흉내 낸다고 해서 그 말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인간은 의식을 지니고, 그 의식으로 갖가지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은 그러한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고백을 말할 때, 그는 단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성찰,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의 결단과 같은 것들을, 그는 “믿는다” 혹은 “사랑한다”와 같은 자신의 언어로 발신해낸다. 그렇게 마음에서 나온 말들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을 비추는 작은 광채가 된다.
AI의 말은 의미의 무게를 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 없이 가볍고 그 계산에는 거침이 없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말들을 헤아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현명함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말의 ‘무게’도 필요하다. 가벼움만으로는 의미 있는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고, 그러한 언어 속에서 인간은 무언가 비어있는 듯 방황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인간답게 진심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한 말들의 의미를 진지하게 곱씹을 필요가 있다. 박학다식한 AI는 그러한 성찰에서도 좋은 말벗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