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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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칼럼] 나의 기대가 나의 행복을 채워주길 / 안경진 (전자전기 22) NEW
- 요즘 제 마음에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에 우아해질 것!’,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패한대도’ 보통 실패라는 것을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않고,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는데, 우리는 매번 실패한다 해도 기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먹은 점심이 맛이 없어도 이따 먹을 저녁은 맛있을 거라는 기대, 오늘은 늦게 일어났지만, 내일은 일찍 일어날 거라는 기대,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길 거라는 기대 등등 이런 사소한 기대가 저의 미래를 희망차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매번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지만, 매번 기대하니까 내일이 기대되고 살아가고 싶은 거 같아요. 항상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다 보면, 절망의 순간이 와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힘이 바로 기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내일은 또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지! 나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아가 보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지치지 않는 기대는 내일을 살아갈 원동력을 제공해 주는 듯합니다. 이로써 살아가는 힘을 하나 배워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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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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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칼럼] 김성일 (경영대학원 iMBA 21(37기)) / ‘나’라는 껍데기를 벗고서야 알았다 NEW
- 김성일 (경영대학원 iMBA 21(37기))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병아리의 부화를 위해 어미 닭은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알을 품는다. 20여 일이 지나면 병아리가 알 안쪽에서 껍질을 쪼기 시작하고, 알맞은 때에 어미는 밖에서 동시에 쪼아주어 병아리가 쉽게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난 성균관대학교 iMBA 37기로 입학하여 2년 과정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껍질 안에 갇힌 병아리였다. 성균관대학교iMBA 교수님들, 교직원 선생님들, 그리고 나의 선후배와 동기들은 나의 어미 닭이었다.교수님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헌신하시며 강의를 이끌어 주셨고 무엇보다도 선후배 간의 끈끈한 인적 교류와 Network를 강조하셨다. 또 교직원 선생님들은 주경야독 하는 학생들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 선후배들과 동기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응원과 격려 속에서 해외 출장 중인 비행기 안에서 9시간 동안 자지 않고 기말 리포트를 마무리를 할 수 있었고, 해외 현지에서는 일을 마치고 밤새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행복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모두 교수님들, 교직원 선생님들, 선후배와 동기분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솔직히 졸업을 하고서야 깨닫게 된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 입학할 때는 학위가 욕심이 났지만, 졸업할 때쯤 알게 되었다. 학위는 이력서에 한 줄 문장으로 남을 뿐이었고, 학교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내 삶에 남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아집을 버려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그런 의미에서 성균관대학교에서 만난 인연들은 나의 어미 닭이었다. ‘나’라는 아집의 껍질 안에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매일을 바둥거리며 살던 나를 2년 동안 품어주고 보살펴 주었기에 나는 껍질을 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모두 그분들의 덕분이다.다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꽃 피는 봄이 오면 대운동장 벤치 옆에서 동기들과 짜장면과 탕수육을 함께 하고 싶다. 초여름이 되면 교수님들, 선후배들과 대운동장에서 함께 마음껏 체육대회를 하고 학교 근처에 가서 막걸리와 파전으로 뒤풀이를 하고 싶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를 거닐고 대성전 앞에서 인생 한 컷을 만들 수 있는 학교 투어를 해보고 싶다. 겨울이면 기말고사를 마치고 터덜터덜 학교 정문을 지나 뒷골목 어느 선술집으로 들어가 술잔을 기울이며 고생하였노라 서로를 토닥이며 불그스레한 얼굴로 취하고 싶다.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기꺼이 나의 ‘어미 닭’이 되어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 성균인으로서 성균관대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제 나도 누군가의 '어미 닭'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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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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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우(의학 02)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전임대우 부교수/손목 골절,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로 NEW
- 의학칼럼 1997년 설립된 모교의 의과대학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교시에 따라 인류사회에 이바지할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두고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다. 현재까지 학사 751명, 의학전문대학원 석사 117명, 일반대학원 석·박사 2,062명 등 총 2,930명의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의과대학 동문들의 의학 상식을 들어보기 위해 ‘의학칼럼’ 코너를 마련했다 심재우 (의학 02)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전임대우 부교수 손목 골절은 상지(팔)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골절이다. 손목 골절의 정확한 표현은 팔을 이루는 노뼈와 자뼈 중 노뼈의 손목 관절 부위의 골절을 말한다. 주로 고령층이 넘어질 때 손목을 짚으면서 발생하며 젊은 연령에서는 주로 운동 중에 다치면서 발생할 수 있다. 손목 부위는 뼈가 굉장히 잘 붙는 부위로 과거부터 깁스 치료로 좋은 결과를 얻어 왔으며, 현대에는 더욱 좋은 치료 결과가 기대된다.손목 골절의 치료는 크게 깁스 치료와 수술적 치료가 있다. 깁스 치료는 어긋난 골절을 손으로 당겨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고정 하기 위해 깁스 부목을 대어 4-6주 정도 고정을 하여 뼈를 붙이는 치료다. 깁스 고정을 하여도 조금은 틀어지면서 붙게 되어 외관적으로 손목의 변형을 초래할 수 있으나, 기능상으로는 대부분 큰 불편감을 초래하지 않는다. 특히 손목 골절의 환자군이 대부분 고령이라 활동성이 떨어져 있으므로 크게 불편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러나 현대에는 약간의 외관적인 손목 변형에 대해서도 아쉬워하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고령이라도 활동성이 높은 환자가 많아 약간의 기능장애로도 불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손목 골절의 깁스를 4-6주간 고정하는 치료 과정이 생각보다 불편할 수 있으며, 깁스를 푼 후에도 굳은 관절을 풀어주는 재활·물리 치료가 요구된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수술적 치료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현재로써 손목 골절·원위 요골 골절에 대한 수술법은 전방에 금속판으로 고정하는 수술이 가장 보편적이다(그림 1,2). 이 수술의 장점은 고정 기간이 1-2주 정도로 짧고, 골절 유합 후 변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로 골절이 불안정하여 깁스 치료를 하였을 때 심한 변형이 초래되는 경우 수술을 선택하게 된다. 수술을 권하는 다른 경우로는 직업적으로 깁스를 오래 하기 힘든 경우 혹은 환자가 매우 활동적이라 약간의 변형도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 수술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변형이 심하게 남을 것으로 예상될지라도 심장 기능이 안 좋다든지, 연세가 아주 많은 환자라면 보존적 치료(깁스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이처럼 골절이 있다고 반드시 수술이 필요치 않으므로 수술이 줄 수 있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생각하여 환자가 원하는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 손목 골절은 보존적 치료와 수술적 치료 모두 대부분 좋은 결과를 보인다. 따라서 손목 골절이 발생하여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본인의 골절 상황과 깁스 치료 및 수술적 치료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적절한 치료를 잘 받으면 된다. 또한 고령에서 발생한 손목 골절은 골다공증성 골절을 의심할 수 있다. 손목 골절의 치료와 함께 골다공증 검사 및 치료를 병행한다면 다른 골다공증성 골절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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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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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칼럼] 임형태(법학 93) 법무법인(유한) 지평 변호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이대로 좋은가 NEW
- 법률칼럼 모교의 법학전문대학원은 과거 법정대학과 법과대학에서 출발하여 현재 로클럭 연구관과 판검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전통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단과대학이다. 법정대학,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은 현재까지 학사 10,377명,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1,474명, 박사 117명, 일반대학원 법학과 석사/박사 1,308명 등 총 13,276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 동문들이 성균가족들의 삶에 밀착되는 법적지식들을 설명해 주는 법률상식 코너를 마련했다. 임형태 (법학 93) 법무법인(유한) 지평 변호사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직 고위공무원,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까지도 위 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필자는 위 죄가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직권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면, 직권이란 직무상 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법령의 근거를 가지며 그 내용과 범위는 법령에 의해 개별적인 직무의 내용과 범위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해지기는 하지만 반드시 법령의 명시적인 규정에 의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근거로 하여 간접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언제나 법령의 규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본래 법령에서 그 직권을 부여한 목적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직무행위가 행해진 상황에서 볼 때 필요성·상당성이 있는 행위인지, 직권 행사가 허용되는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여기서 대법원은 직권남용의 판단 기준으로 세 가지, 즉 직권 행사의 목적, 직권 행사의 필요성 내지 상당성, 직권 행사가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 여부를 들고 있습니다. 먼저 직권 행사의 ‘목적’에 대해서 보면, 이는 직권 행사를 하는 공무원의 내심의 의사와 관련되는 것이어서 이를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또한 직권 행사의 목적이 여러 가지 복합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밝힌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남용에 해당하는지는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 직권 행사의 ‘필요성 내지 상당성’에 관하여 보면, 이는 직권 행사가 불필요함에도 이를 행사했을 경우 직권남용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무원이 행정행위를 함에 있어 ‘필요성 내지 상당성’ 판단은 담당 공무원의 재량 판단에 맡겨진 것입니다. 따라서 사후적 판단에 의해 그 재량 판단을 그르쳤다고 하여 형사처벌을 과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마지막으로 직권 행사가 ‘법령상의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관하여 보면, 공무원은 법이 정한 요건에 충족되게 직권을 행사할 의무가 있고 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월권행위인 것이지 직권을 남용한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더라도 하위 공무원이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된 공무원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실행위만을 보조하는 공무원인지 여부가 명확하지도 않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된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상급 공무원이 하위 공무원을 배제하고 직접 실행행위를 하면 죄가 되지 않고 하위 공무원에게 지시하면 죄가 된다는 것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위 공무원으로 하여금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여 행정행위를 하도록 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서 이는 월권행위이지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위와 같은 불명확성으로 인하여 정치보복 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매우 크므로, 폐지하거나 개별법률에서 필요한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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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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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칼럼] 김경호 교수(사학 82) / 진시황, 절제를 모르는 인간의 욕망 NEW
- 인간의 본성 중 타자에 대한 과시, 탐욕 그리고 교만 등이 잠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진시황, 자신이 세운 진 제국이 영원불멸할 것이라 믿고 신(神)이 되고자 한 그에게서 우리는 위대한 전제군주로서의 모습 뿐만아니라 절제를 모르는 인간이 가진 욕망의 한 면을 보게 된다. 김경호 교수 (사학 82)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겸 원장 중·고등학교 시절 폴뉴먼, 스티브 매퀸 등이 열연한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이란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중, 한 노인이 138층의 빌딩 앞에서 꼭대기를 쳐다보다 뒤로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웃지만, 이 웃음은 곧 빌딩 전체가 화마(火魔)에 휩싸이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교만함으로 쌓아올린 138층의 마천루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물론 어린 나이인 당시에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참담한 재난을 불러 일켰다는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끝없는 욕망과 과시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Babel)탑’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하늘의 문이라는 의미인 ‘바벨’이라는 도시 건설이 중단된 것은 인간들의 이성에 의한 자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하늘에 닿고자 한 인간들의 ‘과분(過分)’에 대한 경고 메시지였다. 바벨탑의 교훈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 그 형상은 남아 있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주변에는 인간의 권력과 야망을 상징하는 조영물들은 역사 유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역사상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시안[西安] 근교 위수(渭水) 강변에 잇닿아 쭉 늘어선 듯 한 모양으로 조성된 전한(前漢)시기 황제릉이 그 대표적일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대하다. 자신이 죽어서도 현재 누리고 있는 권력과 지위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인간의 ‘덧없는’ 바람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실에서 누리고 있던 강력한 권력과 지위가 영원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진시황제(秦始皇帝)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로 불리는 진시황제(B.C.259∼B.C.210)는 13세에 즉위하여 37년 동안 재위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이룬 통일의 대업을 스스로 위대하게 생각하여 ‘황제’라 칭하고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등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한 최초의 군주이다. 반면에 가혹한 법치(法治)와 만리장성과 수로(水路)인 영거(靈渠)의 수축, 아방궁 건설 등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의 삶을 피폐케 한 폭군으로 평가받는 등 상반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는 13세(B.C.247)에 즉위한 후, 대규모의 토목공사인 자신의 능묘(陵墓)와 능묘의 호위군단으로 추정되는 병마용갱(兵馬俑坑)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당시 2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진나라 인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72만 명의 백성이 능묘 건설에 동원되었다. 그렇다면 진시황제는 무엇 때문에 거대한 능묘를 건설하고자 했을까? 이에 앞서 능묘의 규모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사기’와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진시황릉은 높이 76미터, 동서 345미터, 남북 350미터로서 4만 평방미터의 규모이며, 주요 구조는 지하궁전, 방대한 건축군, 침전(寢殿)과 편전(便殿) 등으로 구성되어 살아있는 지하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지하궁전은 중심의 깊이가 30미터로 추정되는 관곽(棺槨)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능묘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진시황릉의 조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은 지하궁전의 내부 구조이다. 史記에는 “수은으로 강하대해를 만들었다(以水銀爲百川江河大海)” 라는 기록이 있다. 중국지질조사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지하 궁전내에 수은의 분포는 동남과 서남쪽에서 많이 검출되었고, 동북과 서북 방향이 적다고 한다. 史記의 기록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현재 중국의 발해만(渤海灣) 중심의 산동지역이나 사천 지역의 위치에 해당한다. 또한 史記에는 “위에는 천문을 갖추고 아래에는 지리를 갖췄다(上具天文 下具地理)” 고 하였는데 아마도 묘실의 천정에는 해와 달, 별자리를 그려 넣고, 아래에는 수은으로 대표되는 산천지리(山川地理)를 묘사한 것이다. 즉 현실 세계를 그대로 살아있는 지하세계로 옮겨놓은 것이다. 사후에도 지하 왕국안에서 천문을 관찰하고 지리를 살펴 모든 것을 통치하고자 하는 진시황제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어쩌면 진시황제는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신이 되고자 한 이룰 수 없는 꿈을 추구하려 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허망된 ‘꿈’은 자신의 능묘를 호위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능원에서 동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지 곳에 위치한 병마용갱이 잘 보여준다. 병마용갱은 3개의 갱에서 현재까지 대략 8천 여 개의 도용(陶俑)과 도마(陶馬), 4만여 점의 청동 병기가 출토되었다. 이와같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영원함을 갈구하던 진시황제! 그는 말년에 자신이 이룬 업적이 ‘영원불멸’한다는 굳은 믿음하에 불사(不死)의 명약까지 구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지만,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상상을 초월한 시간과 인력과 재원이 투여된 진시황릉의 완공이 막바지에 이른 진시황제 말기에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농민 반란을 시작으로 영원불멸의 통일 제국은 15년의 단명국가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동시에 자신의 제위를 계승할 황제들의 시호를 2세, 3세로 칭하여 만세까지 번영하리라 생각했던 진시황제의 꿈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진제국은 불과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뒤로 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통일 제국이 단명으로 멸망한 것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의 본분을 겸허히 지키지 못하고 ‘불사의 신(神)’이 되고자 한 진시황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은 무리일까? 오늘날 연간 수 백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는 진시황릉과 병마용갱! 2천년 전의 죽은 진시황이 현재 살아있는 시안[西安] 시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의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어쩌면 진시황제가 일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권력과 존재를 만천하에 과시하는 과도한 행위로 후대 사람들이 진시황제의 위업을 알게 되었고 후손들에게 수많은 관광 재원을 보장하고 있으니 진시황제의 욕망은 달성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떠올리면 위대한 통일 업적과 동시에 그의 통치하에서 고통받은 백성들이 생각나는 것은 물론이요 영생을 꿈궈 신이 되고자 한 그에게서 측은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지난 코로나 시절 동안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새로운 운동 겸 취미를 즐기게 되었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지친 심신이 회복되어 나에게는 둘도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새로운 봄이 시작되니 다시 자전거 타기를 시작할 생각이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다 보면 어느 덧 잠실 철교 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상이한 두 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한 쪽은 바벨탑과 같이 우뚝 솟은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거대한 빌딩과 다른 한쪽은 붉게 노을진 환상적인 한강의 저녁 풍경이다. 평범한 우리에게는 높이 쌓아올릴 탑과 같은 야망도 거대한 황제릉을 조성할 만큼의 권력이나 지위는 거리가 먼 듯 하다. 이런 것도 인생을 살면서 축복인 듯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부족한 것 만도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구절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때로는 과한 욕심을 부리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꿈틀거리는 것은 필자에게도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속성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를 애써 외면한 채 한강 변에서 높은 빌딩에서의 삶을 꿈꾸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한강의 저녁 노을을 감상하고자 노력하는 삶이 일개 서생(書生)이 즐길 수 있는 최대의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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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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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칼럼] 아이 없는 세상 / 권태호(정치외교 85·한겨레신문 논설실장) NEW
- 권태호(정치외교 85·한겨레신문 논설실장)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2022년 0.78명), 출생아 수는 23만명이다. 100년 전인 1925년(55만명)의 절반도 안 된다. 지난해 말 현재 1941년생 생존자가 26만명이다. 2023년생 아이들의 수가 83살 노인들보다 더 적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감소 속도는 이젠 공포스러울 정도다. 1959년~71년(1965년 제외) 매년 100만명 이상이 태어났다. 그리고 2000년까진 60만명대를 유지했다. 분기점이 되는 해가 2001년과 2017년이다. 2000년 64만명에서 2001년 55만명으로 갑자기 9만명이 줄어들고, 이듬해 40만명대로 떨어졌다. 그래도 2016년까진 베이비부머의 자식인 에코세대로 인해 40만명대를 버텼으나, 2017년 35만명으로 툭 떨어지면서 이후 급속도로 떨어졌다. 15년간 40만명대를 유지했는데, 30만명대는 불과 3년(2017~19)만에 스치듯 지나갔고, 2020년부터 20만명대로 하락했다. 합계출산율은 OECD 평균이 1.58명(2021년 기준)인데, 우린 그 절반이다.아이를 키운 사람은 안다. ‘효도는 7살까지 다 한다’고 하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그럼에도 아이를 안 낳는 이유를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이를 낳는 게 나의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2017년을 기점으로 출산율이 크게 떨어진 이유를 외환위기(IMF) 영향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시절, 갑작스런 경제적 어려움을 지켜본 경험이 뼛속 깊이 각인된 탓은 아닐까.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이 저출산 속도는 과거 우리나라가 그만큼 빠른 압축성장을 한 대가를 이제 뒤늦게 치르는 것은 아닐까. 치열한 경쟁은 고도성장과 윤택한 경제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런데 이후 우린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보단 이긴 자가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을 방치하고 오히려 조장했다. 이를 ‘경쟁력’이라 부르며, 자본주의 사회라며 당연시했다. 모두 다 끝없이 인생달리기를 한다. 맨몸으로 뛰어도 쉽지 않은데, 아이까지 들쳐업고 뛰어선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과거 스페인이 중남미를 침범할 때, 당시 원주민들은 셋째 아이를 낳으면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 당시 유럽 백인들이 이를 두고 ‘미개한 족속’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복군이 쳐들어올 때, 부부가 아이 하나씩만 들쳐업고 도망갈 수 있었다. 셋째는 온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출산 현상이 이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이전에는 주변에서 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은연중 압박이 되기도 했다. 앞으론 결혼않고 아이 낳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아이없는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더 커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저출산에 더이상 재정도 투입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 살기 좋은 세상’, ‘가치의 다원화가 용인되는 세상’, ‘좀더 너그러워지는 세상’, ‘좀 덜 긴장해도 되는 세상’을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 세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아이를 잘 키워 세상에 내어놓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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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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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칼럼] 나만의 청사진을 찾아서 / 강혜인(철학 22)
- 나만의 청사진을 찾아서 -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를 읽고 - 나는 종종 세상에는 이상적인 '인생의 청사진'이 있고 이러한 청사진을 반드시 따라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마치 게임 퀘스트처럼 정해진 단계를 따르며 살고 있다. 고등학생이면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해야 되는 것이 당연지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을, 결혼 적령기가 되면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는 것까지… 일종의 ‘임무’ 같은 것들이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누가 더 빨리, 그리고 많이 퀘스트를 통과해서 높은 레벨을 달성하는지 경쟁하며 ‘가장’ 이상적인 삶을 향해 성취하려 애쓴다.그렇지만 이 청사진이 우리 개개인에게 모두 맞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속도에 따 라서 삶의 단계들을 건너뛰거나, 조금 더 늦게 시작하기도 한다. 결국 인생은 우리 개개인의 고유 한 이야기와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빛나는 것이다.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 될까? 나는 이것이 기 드보르가 말했던 것처럼 현재 우리가 스펙타클 사회에 잠식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는 교환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지화된다. 이제 사람들는 단순히 자본을 쫓지 않고, 자본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펙타클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모두가 동일한 인생의 청사진을 향해 달리도록 조장한다. 심지어 스펙타클은 사회가 제시한 인생의 청사진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있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치부하기도 한다.우리가 이러한 스펙타클 아래 저항없이 지배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와 과거에 매료되어 가장 중요한 현재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늘 지나간 과거에 대해 후회하고 미래에 대한 이상을 꿈꾼다. 스펙타클은 이러한 점을 간파해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은 또 이를 소비함으로써 후회되는 과거를 극복하고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펼쳐지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동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의 삶을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나의 경험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그 누구보다 스펙타클의 그물에 잘 걸려있던 사람이다. 학창시절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일명 ‘모범생’이었다. 한 해도 빠짐없이 반장을 했고 우수한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늘 말하듯이, 고등학생의 나는 훌륭한 인생을 살기 위해 좋은 대학을 반드시 진학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심 지금 내 모습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점점 비슷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학에 입학하기 전,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기업의 장학금 면접을 보러갈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면접에서 한 번도 탈락해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 있게 면접장에 들어갔다. 나의 진로와 삶의 가치를 물어보는 질문에 나는 어려움 없이 생활기록부에 적은대로 로봇처럼 답변을 쏟아냈으며 누가 봐도 바람직하고 선한 가치들을 대답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 나는 그동안 명문대학이 합격시킬 이상적인 나를 만드는 데 집중했지, 진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가치들을 중요시하는 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심사위원에게 진정성이 전혀 없는 부풀려진 답변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탈락한 경험은 큰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스펙타클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현재의 선택을 신중히 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 중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진정한 욕망과 가치를 찾고 이를 추구하며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고 싶다. ‘인생은 내가 쓰는 나 자신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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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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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칼럼] 모국어 연가 / 김인숙 (약학 78) 성균관대 북미주 연합 동문회 사무차장·미NIH연구원·수필가
- 모국어 연가 김인숙 (약학 78) 성균관대 북미주 연합 동문회 사무차장·미NIH연구원·수필가 “받았다!” 수십 년 전, 미국 모 연구원에서 보내온 2년 동안의 연수 허가 우편물은 내겐 일등 당첨된 복권보다 더 큰 흥분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니까’라는 생각에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어줍은 영어가 다소 걱정은 되었지만, 그보단 들뜬 마음이 더 커서 잠시 여행 하듯이 한국을 떠나왔다. 연수 기간을 연장해서 계속 머무르다 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결국 난 이민자가 되었다. 이민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딪치는 큰 문제 중 하나는 언어다. 한국말을 곧잘 하던 내 아들도 유아원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영어만 쓰려고 했다. 한국말 쓰라는 나의 요구에 왜 그래야 하냐고 토를 달기 시작했다. “엄마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 엄마랑 얘기하려면 네가 한국말을 배워야 해.”라고 하자, 자기가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면서 자기가 하는 말을 따라 하라고까지 했다. 그때부터 그 애와 언어 싸움을 시작했다. 한국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한동안 아이는 자기 사촌 형들과 잘 노는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애가 방에서 뛰쳐나오더니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 우는 게 아닌가. 모두 놀라서 난 왜 우느냐고 물었고, 올케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사촌 동생이 우느냐고 추궁했다. 조카들 잘못이 아니었다. “형들이 뭐라고 말을 계속하는데 내가 다 못 알아듣겠어”라고 소리치면서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 애가 네 살 때부터 십삼 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일이다. 어느 날, 학교 행사에 학부모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안내서를 가져왔다. 내가 가겠다고 하니, “학교 가면, 다들 영어로 말해서 엄마가 못 알아들을지도 몰라.”라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아이한테 엄마가 어떻게 비쳐 있었는지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를 위해서 어린 나이의 자식들이 엄마 대신 나서서 대변한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들어왔다. 덕분에 아이들이 일찌감치 철드는 것 같아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안쓰럽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막상 내 아들 입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말을 듣게 되자 나 또한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집에서 한국말만 쓰라는 강요를 포기했다. 아이들이 한글학교만 잘 다니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르칠 의무를 포기한 이상 아이들에게서 유창한 한국어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언젠가 어느 모임에 갔을 때, 누군가가 아무리 외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용하는 언어는 자기 모국어라고 말했다. 인생을 정리하는 순간이 어떤 언어를 쓸지 고민할 그런 여유 있는 때는 아닐 것이다.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사용하는 언어를 쓰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 순간, 언어 공백으로 이어질 나의 슬픈 마지막이 연상되어 눈물이 났다. 젊었을 때 미국으로 건너와 팔순이 넘은 나의 시어머니를 봐도 그렇다. 시어머니는 영어가 유창하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 분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바깥출입이 적어지니 영어를 쓸 기회도 적어지고 단어도 하나씩 잊게 되고 귀도 점점 어두워지니, 이제 영어가 두렵고 싫다고 한다. 하물며 영어만 쓰는 사위가 부담스러워 이젠 딸네 집에 가서 며칠 지내는 것도 마다한다. 나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한류의 영향으로 세계가 들썩인다.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열정도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다. 미국 대학에서도 한국어 강좌를 서둘러 개설하고 있다. 이전에는 한국인 2세들이 주로 듣던 수업이었지만 이젠 한국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인기다. 얼마 전 큰아이가 “엄마가 계속 한국말을 썼더라면 내가 한국말을 지금보다 훨씬 잘했었을 텐데, 엄마, 왜 한국말 계속 안 썼어요?”라는 의외의 투정 섞인 질문을 뜬금없이 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집에서 한국말 쓰기를 소홀히 했던 건 나의 인내심 부족을 감추는 핑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앞날을 보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이었을까. 요즘은 오랫동안 멀리했던 한국 방송을 자꾸 보게 된다. 넷플릭스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져 나올 뿐만 아니라 가끔 미국 내 인기 순위 10등 안에 들기도 한다. 이 뿌듯함이라니. 한국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긋해진다. 나의 언어도 서서히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아니, 나의 모국어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나의 사랑, 나의 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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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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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칼럼] 왜 유방에 암이 생겼는데 겨드랑이도 수술하나요?
- 의학칼럼 - 이세경 (의학 97)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1997년 설립된 모교의 의과대학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교시에 따라 인류사회에 이바지할 우수한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두고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으로 도약하고 있다. 현재까지 671명, 의학전문대학원 석사 117명, 일반대학원 석·박사 1,874명 등 총 2,662명의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의과대학 동문들의 의학 상식을 들어보기 위해 ‘의학칼럼’ 코너를 마련했다. 왜 유방에 암이 생겼는데 겨드랑이도 수술하나요?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적절한 순간이 되면 노화를 거쳐 소멸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하지만 암세포란 여러가지 이유로 소멸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계속해서 자라고, 더 나아가 원래있어야 하는 자리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퍼져 본디 장기의 기능을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포를 뜻한다. 유방암이란 이러한 세포가 유방조직에서 생긴 것을 뜻하는데, 우리나라 여성에게서 가장 호발하는 암으로 매년 그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유방암치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치료인 수술적 치료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유방암의 수술은 크게 유방에 대한 수술과 겨드랑이 림프절 수술로 이루어진다. 유방쪽 수술은 암을 포함하여 정상 유방의 일부를 제거하여 유방조직을 보존하는 유방 보존술과, 암이 넓게 분포하여 유방 보존이 힘든 경우 전체 유방을 절제하는 유방 전절제술이 있다. 유방은 보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여성환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는 단순히 병의 기수나 암의 진행정도로 결정되지 않는다. 유방에 대한 수술은 병기와 상관없이 유방내 종양의 크기, 넓이, 위치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술을 판단하게 되는데, 각 개인의 유방의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암, 같은 크기라 하더라도 환자에 따라 수술 방법이 달라지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60~70%의 유방암환자들이 유방을 보존하는 유방보존술을 받고 있다.앞에 말했듯이 다른 곳으로 퍼지는 성질을 가지는 유방암세포가 가장 먼저 거쳐 지나가는 곳이 바로 겨드랑이 림프절인데, 이곳에 대해 암의 진행여부를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 림프절에 존재하는 유방암세포의 제거의 목적으로 겨드랑이 림프절 수술이 진행되게 된다. 따라서 유방암 수술이라고 함은 유방쪽 수술과 겨드랑이 림프절 수술을 한 세트로 일컫는다고 봐야 한다. 아주 오래전에는 겨드랑이 림프절의 전이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하는 액와림프절 곽청술을 시행하였으나, 약 20여년전부터는 암세포가 지나가는 정류장 같은 곳인 감시림프절만 먼저 제거하여 전이 여부를 확인 후 암세포전이가 발견된 경우에 액와림프절 곽청술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근래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결과에 근거하여 감시림프절에 전이가 3개까지 있는 경우에도 액와림프절 곽청술을 생략하는 쪽으로 변화한 상황이다. 이렇듯 최근 항암치료와 표적치료, 항호르몬치료, 방사선치료 등 여러 보조치료의 발전으로 유방암수술은 그 수술 범위를 점점 축소하여 환자의 미용학적인 만족도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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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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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칼럼] 이런 경우도 입찰담합이에요? / 고세경 (정외 96) 고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
- 법률칼럼 - 고세경 (정외 96) 고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 모교의 법학전문대학원은 과거 법정대학과 법과대학에서 출발하여 현재 로클럭 연구관과 판검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는 전통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단과대학이다. 법정대학,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은 현재까지 학사 10,377명,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1,469명, 박사 5명, 일반대학원 법학과 석사/박사 1,254명 등 총 13,105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과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 동문들이 성균가족들의 삶에 밀착되는 법적지식들을 설명 해 주는 법률상식 코너를 마련했다 이런 경우도 입찰담합이에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하는 행위 중 대표적인 것으로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흔히 발생하는 것이 ‘입찰담합’입니다. 입찰담합으로 적발되면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고, 위법성이 중할 경우에는 형사고발(회사 및 직원 개인)까지 당할 수 있으며, 나아가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가 발주한 입찰에서 담합한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까지 받을 수도 있으므로, 한번 적발되면 회사 운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입찰담합은 아예 가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런데, 일부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행위가 입찰담합인지 잘 모르고 담합에 가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들러리만 서는 등 자신이 이득을 보지 않은 경우, 해당 입찰 품목이 특정 사업자만 납품할 수 있는 경우, 합의한 대로 실행되지 않아 다른 사업자가 낙찰받은 경우, 전체 입찰 참가자가 아닌 일부 참가자끼리만 합의하는 경우 등을 담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법원과 공정위는 이러한 경우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담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즉, 입찰담합은 입찰에 참가하는 사업자 간에 낙찰자, 투찰금액 등을 합의함으로써 성립하기 때문에 이득을 보았는지, 합의한 낙찰예정자가 낙찰받았는지, 전체 사업자가 가담하였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성립하고, 이득이 없더라도(들러리만 섰더라도) 해당 입찰의 규모에 따라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2021. 12. 30.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은 과징금 상한을 종전보다 2배 높였습니다).또한, 담합은 2개 이상의 사업자가 관여하게 되므로, 공정위가 조사 과정에서 담합에 대한 증거를 여러 사업자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바, 자신에게 증거가 없다고 하여 담합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섣불리 담합 사실을 부인하거나 무조건 모른다는 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자칫 더 중한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사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한편, 공정거래법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두고 있는데, 은밀하게 발생하는 담합의 특성상 담합 적발을 용이하게 하고, 담합 가담자 사이에 신뢰를 무너뜨려 담합을 중단시키기 위해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가 그 사실을 자진신고하는 경우 해당 사업자에게 시정조치나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것입니다. 다만, 자진신고자라고 하여 모두 감면해주는 것이 아니라, 1, 2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만 감면 혜택을 주므로(1순위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전액 면제, 2순위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50% 감경), 자진신고를 한다면 2순위 이내에 들 수 있도록 신속하게 신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처럼 입찰담합은 적발되면 매우 중한 제재를 받게 되므로, 애초에 담합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나, 불가피하게 조사받게 되었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진신고 등 회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면밀히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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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총동창회
- 작성일 2024-02-22